※ 대학역사연구회는 우리 대학 직원 15명이 모여 5년 째 교정 내 역사문화재나 기념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연구회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메타세쿼이아가 우리 대학 교정에서 자란다니… 천연기념물로라도 지정해야 할 일인데 어찌 된 일인지 조용하기만 하다. 치과대학병원 앞에 하늘 높이 치솟은 늠름한 자태의 나무. 뿌리 주변이 온통 아스팔트로 뒤덮여 나무가 잘 자랄까 걱정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정하도씨(광주에서 양묘장 경영)가 일본에서 묘목 10여 그루를 어렵게 들여와서 그 가운데 3그루를 우리 대학에 학술연구용으로 기증했다. 10여 그루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나무가 바로 이 나무이다. 임학과 오광인 교수는 삽목번식을 연구하여 대량 번식에 공헌했다. 수목원의 울창한 숲은 1960년대 당시 삽목번식으로 심은 1세대이다.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쿼이아는 김재호 씨가 우리대학 1세대 나무에서 채취하여 삼목한 2세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현로의 메타세쿼이아는 수목원의 나무가 아니다. 외래종이고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에 내리는 천근성(淺根性)이어서 가로수로 부적합하다는 반대 때문에 당시 농대 연습림의 묘목을 사용하지 못하고 시중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항공사진과 직원들의 기억을 종합해 보니 최한선 총장과 김상권 사무국장 시절인 1992년 가을에 가로수로 심었음이 고증되었다.

대학신문에는 이름도 생소한 박사림(博士林)이 조성되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1967년 4월 5일 식목일에 당시 박사학위를 받은 15명이 기증한 15그루와 박하욱 총장과 조규찬 대학원장이 기증한 2그루를 합쳐서 모두 17그루의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를 노천광장 앞 박사림(민주마루와 대운동장 사이)에 심었다. 1972~3년까지 5~6년 동안 지속하다가 중단되었다. 1971년 항공사진을 보면 이미 7~10년생 크기이다. 지금은 34그루만 남았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란 하늘에 젖어 있다”로 시작하는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 일제강점기에 개교한 초등학교 교정에는 어김없이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가 심어져 있다. 우리 대학에도 경영대에서 사회대 옆을 지나 제2학생회관과 사대부중고, 약대에서 후문까지의 길가에도 아름드리 가로수로 자란다. 경영대 앞의 나무는 수형이 곧고 자태가 우람하여 그중 자태가 가장 빼어나다. 토양을 정화하는 나무, ‘정토수(淨土樹)’라 하여 공해에 잘 견디기 때문에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도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도들과 산책하면서(페리파테인) 강의하고 논의한 페리파토스(산책길)에서 유래되어 페리파토스학파(소요학파)의 나무, 일명 철학자의 나무라고도 한다. 잎과 가지가 너무 무성하다고 해서 무자비하게 가지를 잘라 버리지만 알고 보면 매우 유익한 나무이다. 넓적한 잎은 시끄러운 소리를 줄여주는 방음 역할에 탁월할 뿐만 아니라 한여름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기도 하고 오염된 공기의 정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교정에서 자라는 고목들의 수령은 옛 용주마을(사회대 앞)과 광주 남문 입구(의학박물관 옆) 당산나무인 느티나무는 300여 년, 메타세쿼이아 어미나무(母樹)는 65년, 히말라야시다는 52~60년, 플라타너스 약 55년 이하, 백합나무는 약 50년 전후이다. 체육관 앞 느티나무도 용주마을 당산나무에서 번식했다.(박내경)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박건의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란 노랫말에 등장하는 마로니에(서양칠엽수). 1980~90년대에 지춘상 교수 자택에서 인문대 2호관 입구로 옮겨 심은 나무이다. 자태도 빼어나지만 늦가을 단풍으로 물들 때면 초록과 단풍 색의 조합이 곱다.

구월의 초입에 늦은 점심을 먹고 후문에서 약대 옆으로 난 호젓한 플라타너스 숲길을 따라 홀로 거닐어 본다. 고목(古木)들이 지켜봤을 현대사의 뒤안길을 생각하며 둘레길 산책 삼아 교정 한 바퀴 걸어보아도 좋을 일이다.

황호균(대학역사연구회 대표필진)
황호균(대학역사연구회 대표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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