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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과 검은 장갑

기사승인 2018.03.05  15: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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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9호 줄탁

동계올림픽에서 한 쇼트트랙 선수의 헬멧에 부착된 노란 리본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극우사이트 회원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정치·인종·종교 차별에 관한 시위나 선전을 금지하는 올림픽 위원회의 방침에 위배된다며 문제 삼아 제소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조롱과 멸시가 흥미로운 놀잇감인 극우사이트 회원의 행동을 차치하더라도 올림픽의 역사에서 선수들의 제스처와 퍼포먼스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화제를 일으키며 TV 프로그램의 흥미로운 소재로 소개되고 있다. 한 장면을 소개하자면 세계가 68혁명이라 불리는 변혁의 움직임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던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고개를 숙이고 검은 장갑을 손에 낀 주먹을 불끈 쥔 채 시상대에 올라 있는 두 흑인 선수가 있었다. 육상 200미터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흑인권력운동을 상징하는 제스처로 메달을 박탈 당하고 다음 날 숙소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며 미국육상연맹에서 제명까지 당한다. 은메달을 딴 호주의 백인 피터 노먼도 이 항의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호주육상계에서 배척 당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 흑인들의 시민권운동 흐름에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마틴 루터 킹이 미국 사회의 평화와 통합을 상징하는 긍정적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반면 흑인민족주의의 흐름에서 흑인권력을 실현하려고 했던, 먼저 공격 당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 블랙팬더의 특징을 상징으로 채택해 활동했던 블랙팬더당은 검은 베레모, 검은 자켓, 검은 구두에 총을 든 전투적인 건달들의 이미지로 역사에 남아있다. 말콤 X가 흑인민족주의 관점에서 주장했던 기성 미국 사회의 통합에 반대하고 흑인들이 단결해 자신들의 땅, 생활, 문화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확보하자는 흑인권력운동의 방향에서 1966년 오클랜드의 메리트대학 출신의 휴이 뉴턴, 바비 실, 데이비드 힐리어드 등이 프란츠 파농, 체 게바라, 마어쩌둥 등에게서 그들의 이론을 끌어내 사회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당 강령을 작성하고 미국의 총체적인 정치적, 경제적 변혁을 최종 목표로 등장하였다. 50여 명의 작은 조직에서 시작해 28개 주와 워싱턴, 알제리의 국제 지부까지 5천여 명이 넘는 당원들을 둔 조직으로 성장했으며 팬더위원회가 영국, 덴마크, 스웨던, 독일, 프랑스에서 만들어졌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블랙팬더당을 만들었고, 이스라엘에는 블랙팬더당 지부까지 있었다. 비록 그들이 마초적이고 남성지배적인 이미지로 대중에게 인식되었지만 남성과 여성은 자신의 능력과 활동성에 따라 일하고 평가됐으며 실제 당의 조직 활동에서도 여성 당원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1982년 오클랜드 공동체학교의 폐교로 당이 해체될 당시에는 50명도 안 되는 당원들이 남아 있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이 펼쳤던 인종, 젠더, 성적 지향과 상관없는 모든 주민의 자기결정, 다인종적 정책, 공동체 서비스 등은 이후 전개되는 여성해방운동 등 여러 대안 운동의 길을 미리 제시해 주었으며, 힙합과 같은 예술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총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 무장저항의 지지라는 폭력적 이미지, FBI 역정보 프로그램의 표적이 된 탄압 등으로 해체되었지만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라는 그들의 구호, 다양한 공동체 활동들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영화로까지 제작돼 대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 강내영(사회학과 박사과정)

강내영(사회학 박사과정)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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