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은 38년이 지난 역사이면서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1980년 5월 18일 아침 9시 무렵 전남대 정문에서 군인들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에 대한 ‘광주민중항쟁’의 시작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잔인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진압에 광주 시민들은 분노하였다. 급기야 온 누리에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부처님오신날’인 21일 집단발포로 광주는 피로 물들여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무장을 하여 저항하였고, 군인들은 광주 외곽으로 물러갔다. 26일까지 광주는 해방되었다. 그러나 27일 새벽 시민군은 계엄군에 제압되었고, 광주는 분노와 슬픔을 감추고 침묵에 빠졌다.

이후 전남대 학생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생들과 민주시민단체들 그리고 5·18관련자들은 지속적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광주민중항쟁’은 1995년 12월 21일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에서 ‘5·18민주화운동’이라고 법률적으로 공식 규정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직도 중요사안에 대한 진상은 규명되지 못하였고, 한켠에서는 왜곡과 폄훼가 계속되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서 사회적 갈등이 계속되고 사회통합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5·18’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후 지난 2월 28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이 규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여본다.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국가차원의 진상보고서가 채택되면 왜곡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민주화운동’ 자체와 특정지역을 폄훼하는 일들이 계속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고, 한편으로는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은 국가폭력과 그 폭력에 저항하는 사건 자체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 흐름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전환점이기도 하다. 5·18을 계기로 우리는 정치·사회·문화는 물론 국제를 좀 더 폭넓게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우리는 역사적 변곡점의 선상에 서있고, 5·18정신에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 불 수 있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민주’ ‘인권’ ‘평화’로 상징되는 5·18정신 속에 역사로서의 ‘5·18민주화운동’의 의미가 있다.

전남대학교가 한국민주화운동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고 ‘5·18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라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전남대학교의 구성원은 누구나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자랑스러움을 자긍심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근래 전남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물론 학교 교직원조차도 상당수가 학교 안에 5·18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전남대학교의 상징이며 5·18기념관이 있는 용봉관(구본부)은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고, 비어있는 좌석을 상대로 5·18정신을 교육하는 기념관내 교육영상실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우리는 갑작스러운 ‘평화의 봄’을 맞았다. 평화의 시대, 그것은 5·18정신이 추구하는 바이다. 평화와 공존으로의 변화의 시대, 5·18정신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에만 머물지 않고 ‘역사로서의 5·18’로 나아가야 한다. 5·18정신은 기리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계승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며, 우리의 염원인 사회통합과 평화통일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전남대학교가 중심에 서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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