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광주에서의 5월은 언제나처럼 하지만 언제가 아닌 것처럼 알 수 없는 묘하고 복잡한 감정들로 꿈틀댄다. 갓 학부에 입학하여 첫 오월을 맞이했을 때는 국가 폭력과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다 아스러져버린 민중이라는 서사적 비장미로 벅차올랐었다. 그리고 오월을 더해갈 때마다 5·18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부당한 왜곡, 압력 등으로 분노했었다. 이러한 감정들은 내가 5·18의 구성원으로 여기며 그 날들의 가치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발적으로 5·18 영화에 후원하고 왜곡에 대응하고 홍보하고 하는 등의 자원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주에 살면서 수많은 실망을 경험하며 나의 긍지와 자부심은 점차 회의적이고 무관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대개 그렇듯 내부의 부조리함에 더욱 실망하고 더욱 쉽게 무관심해지는 법이다. 그러면 난 혹은 우리는 누구에게 실망을 하였는가? 소위 5·18을 대표한다고 하는 사람들 혹은 조직이다.

광주에는 5·18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라 함은 단지 어느 조직의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5.18과 관련하는 활동을 하는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5.18기념재단일 수도 있고 대학교에서 5·18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대표들은 자신의 대표성에 대한 스스로 얼마나 인지를 하고 행동하고 있을까에 의문을 품게 된다. 대표한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의 표본이 돼 그가 속해 있는 집단 혹은 그가 알리고자 하는 것을 대표를 나타내는 것이다. 막중하고도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역할인 것이다.

5·18을 사랑하는 내 많은 지인이 특정 5.18 재단에서 직원으로, 자원활동가 등으로 몸을 담았었고 어김없이 모두가 그들 조직에서 부당하고 폭력적인 전횡, 그리고 비위를 겪고 고발하였다. 인권과 정의를 표방하고 그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집단에서 그러한 부당함을 겪고 나니 배신과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회의와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표리부동한 대표들은 광주 5·18 정신을 대표해서 미디어에서 그리고 어느 정부 기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에서의 경험 말고도 일상적으로 우리는 5·18 대표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태도, 행동, 이면을 보게 되고 그들의 대표하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우리 내부 구성원들은 그들 대표들이 5·18과 관련하여 보여주고 싶어 하는 특정한 ‘목적이 있는 활동’이 아니라 그들과의 일상적 접촉을 통해 5.18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들의 직업적인 것과 그들 사적인 생활을 구분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밥벌이를 위해 5·18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무관심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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