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현장은 우리 곁에

우리 대학 정문 5·18소공원에 전시돼 있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우리 대학 정문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이다. 1980년 5월 18일 당시 학생들은 당시 정문에 흐르던 용봉천을 사이에 두고 공수부대와 대치했다. 현재 정 문은 1996년에 만들어졌다.

우리 대학은 5·18민주화운동 발원지 이자 이후 전개된 민주화 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다.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실시한 다음 날인 5월 18일 오전 10시 경, 우리 대학 정문에서 학생들은 공수부대와 대치했다. 공부하러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나 ‘휴교령이 내리면 다음 날 10시에 교문 앞에 모이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문에 모인 학생들은 점차 수가 늘었고 자연스럽게 ‘비상계엄 해제하라’ 등의 구호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공수부대는 “돌격 앞으로”라는 외침과 함께 무차별적인 폭력 진압 을 시작했고 학생들은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를 당해낼 수 없었다. 이후 광주역 광장으로 다시 모인 400여명의 학생들은 금남로 도청 앞 광장을 향해 행진 했다. 시위대를 향해 야만적인 폭력을 저지르는 계엄군을 보며 분노한 시민들은 19일 금남로에 모였고 27일까지 항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우리 대학과 5·18민주화운동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타지역에서 왔다는 사회대 ㄱ씨는 “전남대가 발원지라 는 사실은 입학하고 나서 친척들이 이야기 해줘 알게 됐다”며 “친구들끼리 관심 가지고 이야기하는 화젯거리도 아니다보니 모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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