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아침이다. 모든 일들이 새 출발의 날이다. 나도 이제는 16살이 됐다. 을사년의 나의 큰 목표는 상급학교 진학이다. 이제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험악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나의 목표를 달성해야 하며, 꾸준하고 열심히 공부할 것을 새해의 나의 목표로 삼는다.”

1965년 1월 1일, 윤상원 열사 16살이 되는 새해 첫날의 일기이다. 윤열사의 16살 새해 다짐은 여느 꿈 많은 청소년과 다를 바 없다. 그 사춘기 소년의 손끝이 55년이 지나 지금 나의 눈에 비치고, 함께 사춘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강단에서 첫 수업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역사는 머리가 아니라, 손끝으로 써졌다. 머리를 믿지 말고, 당장의 손끝을 믿어라. 머리의 저장 장치는 시간에 반비례로 지워지지만, 손끝으로 써진 글씨는 남아서 전해진다.’
 
다음날 일기는, “오늘부터 집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여태까지 동네에 놀러 다니기에 바빴다. 사랑방에 앉아 쓸데없는 잡담 그리고 추림 등을 하였는데, 그것이 나에게 꾸부러진 길을 걷게 했던 것이다. 오늘 갑자기 나가지 않으려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지만 공부를 한다고 결심하니 그것쯤은 참을 수 있었다.”

이틀간의 일기에서 16살의 청소년 윤상원은 새해 다짐과 흔들림 그리고 굳은 결심을 보여주고 있다. 귀엽고 당차면서 대견스럽다. 지금 살아계셨으면 1950년생인 윤상원 열사는 올해가 칠순이 된다.

16세의 소년은 15년 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호소전단인 ‘광주시민 민주투쟁화보’의 초안을 작성했다. 몸담고 있었던 들불야학 교사들과 함께 19일 오후에 광주시가지에 이를 배포해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리고 그는 시민군 대변인 임무를 수행하면서 도청에서 최후까지 저항할 것을 주장하고, 항쟁지도부의 대변인 역할을 하다가 5월 27일 새벽 결국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열사의 장엄한 마지막 장면은 필자 대학생 시절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통해 접했고, 나이 들어 영화 ‘화려한 휴가’를 통해서도 실감했다.
 
다시 소년 윤상원의 소싯적으로 되돌아가 보자. “아침 온도계를 보니 영하 6도였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 내가 학교에 다닐 일이 걱정됐다. 점심을 먹고 나서 동생의 썰매를 다시 좋게 만들어 주었다. 동생은 어쩔 줄을 모르며 기뻐하였다.” 1965년 1월 5일. 16세 청소년 윤상원의 일기다.
 
※ 윤상원 열사의 일기는 동생 윤태원 님이 (재)한국학호남진흥원에 기탁하였다.
 
▲ 서금석(한국학호남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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