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독일은 유럽연합 중에서도 국가적 위상이 가장 높은 나라일 것이다. 독일이 누리고 있는 정치적, 도덕적 권위의 바탕에는 아우슈비츠 청산을 근간으로 삼았던 법과 교육 제도가 있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이루어진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정이나 왜곡, 나치에 대한 찬양을 범죄로 규정하는 ‘홀로코스트 부정 방지법’을 가장 강력하게 시행하는 나라가 독일이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저항권 교육’이나 정치가들의 거짓 선동을 분별하는 ‘선동가 판별 교육’을 실시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이미 사회적, 법적으로 정리된 5·18 민주화운동을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을 처벌하자는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아직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현실이나,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가 아직도 유지되는 여론 조사의 결과를 볼 때, 독일 국민의 선진 의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정치적 여정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독서 모임에서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를 읽었다. 나치에게 협력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망각하고, 전후 독일의 양심과 지성을 자처했던 종교층과 지도층의 위선을 풍자한 이 소설을 읽고, 회원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의 진정성을 논할 때, 독일이 늘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독일도 전쟁이 끝나자마자 잘못을 뉘우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던가 보다고.

최근 어느 잡지에서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기사를 읽다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독일은 전쟁 종료 후, 60년대까지도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동료들이 그저 반란자로 평가되고 있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나치 잔재의 청산은 세계적으로 분출된 68운동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세대의 요구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는 1963년에 출간된 작품이니, 하인리히 뵐이 종교나 정치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풍경이 있었던 것이다.

1970년에 서독 수상 빌리브란트가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게토봉기희생자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어 사과하고, 과거 청산을 위한 법제나 교육 제도가 정비된 것도 68운동 세대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고 했다. 베를린이 오늘날, 나치 희생자를 위한 추모와 기억의 공간으로 본격적인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도 90년대 이후이며,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꾸준한 시민운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 의식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변모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민의식의 성장과 진보만이 민주 사회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6월 항쟁을 주도한 386세대가 있고, 촛불 항쟁의 분위기 안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들이 있다. 조금씩 민주화를 위한 헌신의 시간들이 쌓여가면 우리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회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5·18 당시의 언론검열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지워졌던 취재 기록들이 복원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헌신의 시간들은 때가 되면 이렇게 역사적인 역할을 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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