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풍경(soundscape)이란 소리를 뜻하는 ‘sound’와 경관을 뜻하는 접미어 ‘scape’의 복합어로, 귀로 파악하는 풍경을 의미한다. 1960년대 북아메리카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생태학 운동을 배경으로, 캐나다 현대음악의 거장인 머레이 셰이퍼(R. Murray Schafer)가 창시한 용어다. <전대신문>은 우리 대학의 자연, 학생활동, 역사 등의 주제로 다양한 소리를 수집해 1602호(3월 18일)부터 연중 기획 보도 중이다.

◆ 고요한 마을에 학생들의 소리가 침투하다!

▲ 1963년에는 현재 우리 대학 정문 위치에 용주마을이 있었다.

우리 대학은 용주, 반룡, 용곡, 상봉, 중봉, 변봉이라고 불리는 부락들 사이에 만들어졌다. 오늘날 ‘용봉’이라는 명칭도 이들 부락의 이름에서 따왔다. 과거 이곳은 대부분 광주평야인 논으로 이뤄져있어 고요했으나 마을에 대학교가 들어서고 대학생들이 생겨나며 소리풍경은 크게 변한다.

처음 학교 건물이 들어설 때는 지역 주민들과 갈등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현재 인문대 1호관이 들어선 자리에는 ‘칠성 바위’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한 부인들이 와 아이를 낳게 해 달라는 간절한 목소리로 채워지던 장소였다. 하지만 건물을 짓기 위해 바위를 제거해야했고 이에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바위를 제거하려는 불도저 앞에 누워버리는 등 소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캠퍼스에 편입된 부지 안에 있던 많은 묘지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도 묘주들의 항의하는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학교가 들어서고 나서, 경영대학 뒤편에 있던 반룡마을과, 법대, 사회대 건물 주변에 있던 용주마을은 ‘대학가’ 역할을 했다. 지금의 ‘상대’, ‘후문’의 모습과 같은 대학가가 형성되기 이전인 70년대까지 반룡마을과 용주마을은 학생들이 하숙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생활공간이었다. 80년대에 맥주가 유행하기 전까지 학생들이 마시는 술은 대부분 막걸리로, 막걸리잔을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회포를 푸는 소리가 마을 어귀에 가득했다. 당시 안주로는 고구마나 토끼탕이 유행이었으며 주인 아주머니가 텃밭에서 똑 꺾어주는 아삭한 상추도 별미 안주였다고 한다. 당시에도 학생들의 고민은 비슷했는지 술자리에서 주로 나오는 이야기 소리는 졸업 후 진로문제, 연애 문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와 같은 내용이었다. 무르익은 술자리에 노랫소리도 빠지지 않고 들리는데, 당시에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나 ‘작은 연못’, 한울의 ‘못생긴 얼굴’ 등의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 각종 염원의 소리로 세운 ‘장승’

▲ 경영대 앞 '조국통일대장군' 장승
▲ 1990년대 학생들이 사범대 1호관과 백도 사이에 만든 장승

우리 대학 곳곳에는 나무로 만든 장승이 놓여있다. 정문 메타세콰이어길 한 쪽 느티나무 앞에는 장승 하나가 놓여있으며 경영대 앞에는 ‘조국통일대장군’이 적힌 장승이 있다. 사범대 1호관과 백도 사이에 ‘한총련사수대’라고 적혀있는 장승과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장승이 하나씩 있다.

정문에 있는 장승은 아무런 문구가 적혀있지 않아 과거 정문 자리에 있던 마을에서 지역 간의 경계표나 수호신 역할의 의미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경영대 앞의 장승은 학원자주를 외쳤던 80년대 학생들이 세웠다고 해석되며, 사범대 1호관과 백도 사이에 있는 장승은 90년대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활동을 했던 운동권 학생들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 정문에 세워진 마을 수호신 장승

보통 마을에서 장승을 세울 때는 주민들이 장승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며 풍물굿을 하는 의식을 갖으며 신명나는 소리와 함께 했다. 마을을 돌며 귀신을 쫓아주고 복을 빌어주던 풍물굿이 과거 우리 대학 축제에서도 진행됐는데, 이로 미뤄보아 우리 대학 학생들이 장승을 세울 때도 다양한 소리풍경이 연출됐으리라 여겨진다. 나무를 깎아 장승의 몸통과 얼굴 부분을 조각하고 몸통 부분에 글자를 쓰는 일에 많은 학생들이 함께 하며 시끌벅적했을 것이고, 풍물패에서 굿을 하면서 나오는 장구, 꽹과리, 북, 징 소리와 이를 구경하는 구성원들의 소리가 장승을 만들 때 함께 했으리라 상상할 수 있다.

◆ 하천부터 연못까지, 물소리와 함께 하는 전남대

캠퍼스에서 보이는 물이라고 하면 용지와 봉지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는 캠퍼스에 흐르는 물들이 더 많았다. 후문과 정문, 농대쪽문을 잇는 용봉천이 있었고, 현재의 인문대학 3호관과 도서관 본관(홍도) 사이에 졸졸 흐르는 계곡이 있어 물소리가 캠퍼스 곳곳을 채웠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은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지하수가 있다는 의미여서 캠퍼스 부지를 선정할 때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복개되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정문에는 용봉천이 흘러 학교로 들어오기 위해 학생들이 다리를 건너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아주 옛날에는 더운 날 멱을 감으러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주민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이처럼 평화로운 소리는 1980년대에 들어, 계엄군과 학생들이 부딪히는 격렬한 소리로 변화했다. 1980년 5월 18일 오전 10시경에 다리를 막으며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과 출입하려는 학생들 사이에서 충돌했던 소리는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 2008년 축제 기간에 용지에서 보트를 타는 학생들의 모습

오늘날 캠퍼스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봉지와 용지의 소리다. 봉지와 용지에서도 과거에는 들렸지만 최근에는 들리지 않는 색다른 소리가 있다. 바로 물놀이 소리다. 더운 여름이면 봉지에 뛰어들어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며 신나게 소리치는 학생들의 소리가 과거에는 종종 들렸다. 2008년 우리 대학 축제인 대동풀이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행사가 진행 됐을 때는 용지에서 보트를 타고 신나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용지가 들썩였다. 요즘 봉지에서는 분수가 만드는 시원한 물소리와 봉지 주변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용지에서는 각종 새들의 소리와 용지의 경관과 새들을 구경하러 온 주민들의 소리로 비교적 고요한 소리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참고자료: 『전남대학교 60년사』, 『전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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