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풍경(soundscape)이란 소리를 뜻하는 ‘sound’와 경관을 뜻하는 접미어 ‘scape’의 복합어로, 귀로 파악하는 풍경을 의미한다. 1960년대 북아메리카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생태학 운동을 배경으로, 캐나다 현대음악의 거장인 머레이 셰이퍼(R. Murray Schafer)가 창시한 용어다. <전대신문>은 우리 대학의 자연, 학생활동, 역사 등의 주제로 다양한 소리를 수집해 1602호(3월 18일)부터 연중 기획 보도 중이다.

◆ ‘바-삭’ 발걸음 따라 가을이 따라와

 

▲ 가을 숲을 즐기는 전남대학교 어린이집 아이들 모습(사진 제공=전남대학교 어린이집)

나무에서 낙엽이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자기들끼리 바람에 날리는 소리, 잘 마른 낙엽이 밟히면서 나는 바스락 소리. 이 모든 소리는 우리 대학 캠퍼스에 가을이 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소리다.

나무와 숲이 많은 우리 대학은 가을이 오면 낙엽 소리를 통해 계절감을 드러낸다. 정문 메타세쿼이아길을 비롯해 후문 길은 오가는 사람이 많은 데다 단풍나무가 많아 낙엽 소리가 유난히 잘 들리는 곳이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산책을 나오는 날이면 작은 발로 낙엽을 밟는 부스럭 부스럭 소리와 신이 난 아이들 목소리가 캠퍼스 곳곳에서 들린다. 아름다운 가을 캠퍼스 풍경을 담기 위해 길가에 멈춰 사진을 찍는 찰칵찰칵 소리와 단풍을 보며 ‘우와’하는 탄성도 캠퍼스에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물씬 느끼게 한다.

까치들의 움직임이 금방 들키는 계절이기도 하다. 까치들이 낙엽이 쌓인 풀밭 위를 총총 뛰어다닐 때면 낙엽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들의 움직임을 뒤따라간다. 선선해진 날씨에 운동하러 나온 지역 주민들의 소리는 덤이다.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거칠어진 호흡 소리, 열심히 움직이는 팔다리가 옷에 부딪히며 나오는 소리들이 일상에 함께한다.

가을을 맞아 더 분주해진 소리도 존재한다. 낙엽을 치우는 소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른 아침이면 바람으로 낙엽을 날려버리는 윙윙 소리와 빗자루로 쓱쓱 낙엽을 쓰는 소리가 출근, 등교하는 이들을 반긴다. 하루 중에도 빗질 소리는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닌다. 쉴 틈 없이 떨어지는 낙엽 소리는 빗질 소리도 쉬지 못하게 한다.

◆ 열매와 결실, 수확의 계절

 

▲ 지난 15일 열린 시민과 함께하는 대학농업 축제 중 추수감사제 행사 모습

가을이 왔다고 마냥 신나는 소리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으악, 으억’하는 고통의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은행을 피하는 소리다. 특히 은행나무가 있는 사회대 앞과 캠퍼스 곳곳에서 자주 들린다. 강의실을 이동하며 분주히 움직이는 발걸음 사이사이 은행을 피하기 위해 보폭을 넓혀 뛰어가는 소리, 그 와중에도 밟힌 은행이 터지는 톡 소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아….’하는 슬픔 섞인 소리가 가을에만 들리는 ‘읏픈(웃기지만 슬픈)’ 소리다. 학생들은 절실하게 피하고 싶은 은행이 환영받는 경우도 있다. 학교 방문객들이 비닐봉지나 호주머니에 은행이나 도토리, 밤을 줍는 은밀한 소리가 한 편에 존재한다.

합법적인 수확 소리는 농생대 실습장에서 들린다. 금빛 머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벼가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는 수확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소리다.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벼를 베는 소리, 지역 주민들이 모여 고구마를 캐는 프로그램의 소리는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만 등장하는 소리 풍경이다.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낫이나 호미를 들고 고구마를 수확하는 현장에서는 끙끙대는 와중에도 수확의 즐거움으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 외에도 사과, 감, 배와 같은 과수들이 결실을 맺으면 이를 연구하고 그 곁에 모여 교수와 학생이 수업하는 소리는 농생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학교가 설립됐을 때부터 있었던 농생대에서 벼를 심고 수확한 역사는 오래됐으나 시간이 흐르며 소리풍경은 조금씩 변화했다. 과거에는 손수 벼를 수확하고 모를 심고 벼를 수확하는 날이면 거하게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추수감사제를 진행할 때면 돼지를 잡아 제사를 올리고 다 같이 먹거리를 나눠먹으며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고 농사의 번영을 빌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콤바인과 같은 기계들이 농사를 주도하며 기계 소리가 주인공이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최근 약 5년간은 추수감사제가 열리지 못했으나 올해는 ‘시민과 함께하는 대학농업 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린 축제에서 추수감사제를 진행해 농생대만의 특색 있는 소리풍경을 되찾았다.

◆ 문화와 함께하는 가을

가을은 문화와 축제의 계절이다. 가을이면 우리 대학 축제인 용봉대동제 뿐만 아니라 각종 음악회와 행사가 진행된다. 특히 음악학과와 국악학과의 정기 연주회가 열리는 날이면 학교를 찾아온 방문객들로 캠퍼스가 북적인다. 공연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캠퍼스를 울리며 가을밤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그 외에도 봉지에서는 플리마켓이 열려 다양한 상품을 사고 파는 소리가 학교를 생동적으로 만든다. 또 후문에서는 청년 그린마켓이나 작은 콘서트가 열려 다양한 소리풍경을 만든다. 단풍으로 오색빛깔 물든 용지 주변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릴 때면 감미로운 음악소리와 풍경이 조화를 이뤄 가을 분위기를 돋운다.

특히 외국인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는 국제교류의날은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날이다. 각국의 음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가 봉지 일대에 설치되고 다양한 언어가 봉지 일대를 왁자지껄하게 채운다. 이색적인 모습에 오고 가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멈추는 소리, 우리나라 학생들과 외국인 유학생들이 소통하며 나오는 웃음소리는 과거에는 들리지 않았던, 글로벌한 우리 대학의 모습을 드러내는 소리풍경이다.

◆ 학생회 선거 소리

 

▲ 1991년 11월 7일 열린 총학후보유세 장면, 백도 앞 광장에 가득찼던 학생회 선거 소리

축제만큼 가장 큰 가을 행사는 바로 학생회 선거다. 가을이면 각 단과대와 학과 단위의 학생회를 비롯해 수만 명의 학우를 대표할 총학생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가 시작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학생회 선거 공고가 적힌 큰 종이를 건물 게시판 곳곳에 붙이러 다니는 소리는 선거 시작을 알린다. 추천인 명단을 채우기 위해 학내를 돌아다니는 예비 후보자들의 소리, 추천인 명단을 채우고 정식 후보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을 펼치는 소리가 가을 캠퍼스를 채운다.

용봉교지와 신문방송사가 주최해 제1학생회관 앞에서 펼쳐지는 정책공청회에서는 학내 언론 기구와 후보자, 학생들과 후보자들 간에 열띤 질의응답이 펼쳐진다. 인문대 벤치와 공대 시계탑 앞에서 진행되는 후보자 합동유세에서는 지나가는 학생들을 향해 소중한 한 표를 호소하는 절실한 소리가 들린다. 넓은 캠퍼스와 강의실을 곳곳 돌아다니며 공약을 홍보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투표 당일이 되면 후보자 유세 소리는 멈추고 투표를 독려하는 목소리가 캠퍼스 곳곳에 들린다. 현장 투표가 주였던 과거에는 단대 건물에 학생증을 들고 투표를 하러 줄 서는 소리가 들렸으나 최근에는 모바일 투표가 주를 이루며 단대 건물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라졌다.

학생회 선거 소리는 학생자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능동적인 학생자치를 상징하는 소리다. 하지만 투표율 미달이나 후보자 미등록으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하는 해가 최근 빈번해지면서, 학생회 선거를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풍경이 축소되고 있다. 많은 후보자가 출마해 다양한 목소리가 학내에 펼쳐지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는 소리풍경을 다가오는 가을에는 들을 수 있을까.

※참고자료 및 자문: 『전대신문』, 농업실습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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