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알 듯이 새해 첫날은 1월 1일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365일 쯤 뒤에 다시 1월 1일이 된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그 시간이 1년이고, 우리는 새로운 1월 1일을 맞이한다. 알고 보면, 1월 1일이라는 시작점은 다분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모든 사람들이 약속하면, 새해 첫날은 ‘희망’이 되고, '관념'이 되고 또 '사실'이 된다. '시간'이 그렇다. 태양이 애초에 어디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없지만, 인류는 1월 1일을 만들어 1년의 시작을 기념한다.

시간은 인류의 창작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뜨는 태양과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은 한결같지만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같으면서도 이렇게 달라진다. 시간이 그렇다. 시간은 ‘희망’을 낳고, ‘계획’을 만들고, ‘만물’을 생산하고, ‘사상’을 지어냈다. 그래서 시간은 어머니와 같다. 인류가 그 어떠한 존재보다 위대한 것은 우리가 ‘시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태양력 1년의 시간 길이를 우리는 이렇게 시작해 왔다.

옛사람들도 태양력을 사용했다. 1년 365일 쯤을 정확히 계산해 내면서 1년의 시작을 함께 기렸다. 옛사람들의 태양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24절기였다. 작대기(규표, 노몬)를 세워 태양이 남중할 때의 작대기 그림자가 가장 길 때를 체크하여 그 지점을 시작점으로 삼았다. 그 시작점이 동지점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의 1월 1일보다 훨씬 과학적이다.

필자는 동지를 시절 중에 제일 좋아했다. 우리는 소싯적부터 동지를 기억하고 이날을 기념하면서 함께 먹고 즐겼다. 오히려 동짓날 잔칫상은 설날 그것보다 푸짐했다. 매년 동지는 지금의 양력 12월 22일이다. 어쩌다가 12월 23일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12월 22일이 동지가 된다. 그러니까 동지, 하지, 입춘, 춘분, 입추, 추분 등과 같은 24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동양식 양력(태양력)이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 왜? 옛사람들이 동지를 그렇게 중히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의 그림자가 가장 길었다가 짧아지는 그 순간의 지점을 찾아 동지점이라고 했고, 그날을 동짓날로 삼아 기념했던 것이다. 한 해의 시작점이 바로 동지였다. 최고의 명절이었다. 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동짓날 밤이다. 역설적으로 이날부터 다시 밤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한다. 희망이 움트는 날이다.

그 희망은 먹는 음식에서조차 스며들어 삶을 살찌웠다. 붉은 동지 팥죽은 한 해의 액운을 쫓고, 다음해를 기약했다. 드디어 동지 죽을 통해 우리는 한 살을 먹었다. 동지 죽 속에 동그란 새알은 태양을 닮았다. 그 새알은 양손으로 빚어 만들어냈다. 간절히 소원을 비는 모습과 닮았다. 새알을 빚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은 가족의 건강일 것이다. 동짓날은 축제이자 조상들께 감사드리는 제사의 의미도 컸다. 이처럼 달력상 동지는 한 해의 마지막이자 동시에 시작을 의미했다. 당연히 그 비중은 시작점에 무게를 두었다.

이제 그 동지의 모습은 우리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동지를 아예 모르는 친구들이 많다. 묘하게도 서양의 달력과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동지의 생명력을 서서히 약해져버렸다. 그 기능(축제와 제사)은 거의 같은 시기에 치러지는 성탄절로 쉽게 대체되어 버렸다. 성탄의 의미도 희망이자 시작을 담고 있다. 충분히 동지의 역할은 성탄절로 흡수되기에 적절한 시절과 맞물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짓날이 사라지고 있는 데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른들의 동짓날 기억이 다음 세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금석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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