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평가를 원칙으로 하는 대학의 성적평가 방식에 교수와 학생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으나 제도개선에 앞장서야 할 대학지도부는 마이동풍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상대평가는 대학인들에게 일종의 적폐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유는 상대평가 도입이 학습의 본질을 중시하는 대학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대학 통제를 꾀하는 교육부의 요구에 따랐기 때문이다. 과연 대학지도부는 현행 성적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가, 아니면 그 병폐를 인식하고는 있으나 개혁할 의지와 역량이 부족한 것인가, 그저 궁금하고 답답할 뿐이다.

더구나 대학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는 다르게 문재인 정권이 대학 운영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의지를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판단에 근거하여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는 대학지도부의 대처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면, 대학지도부가 2010년 전후로 시작된 교육부 주도의 상대평가 유도 정책에 많이 길들어져 있거나 혹은 각종 정부 지원 사업에서 있을 수 있는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저어함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불행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대학은 그가 속한 사회의 여러 조직 중에서 ‘학습’의 본질과 가치를 잘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인에게 학습은 일상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과업이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엄격한 검증의 과정을 요구하는 지적 활동이다.

그런 대학인이 자신의 본질적 과업 중 하나인 학생의 학습 성과 평가의 기준과 방법을 스스로 정립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현재 교과목 성적 평가의 원칙으로 활용하는 상대평가의 목적은 성적을 중심으로 한 경쟁체제의 대학과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그 방법은 동료 간 상호 경쟁평가로 서열을 정하고, 그 서열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식이다. 상호 경쟁에서는 평가의 공정성을 유지한다는 명분하에 암기위주의 객관식 문항과 단순 서술형 시험문제가 주를 이룬다.

학생들은 또한 학점 따기 쉬운 강좌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 결과가 학생들 내에서 유행하는 소위 ‘족보 의존’ 학습 방법이며, 동료들 간에는 서로 높은 점수를 차지하기 위한 비협력적이고 비우호적 경쟁관계가 구성된다.

경쟁을 통해 얻은 성적이 학내외에서 장학생 선발, 기숙사 입주, 취업 등에 영향을 크게 미치다 보니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학생들은 상호경쟁에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상대평가는 대학에서 교육목적으로 제시하는 거창한 명분 또는 논리에 걸맞지 않는 학습태도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상대평가가 비판받는 주요 근거다.

많은 대학인들이 절대평가를 존중하는 이유와 근거는 명료하다. 절대평가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 활동에서 교수와 학생이 설정한 학습 목적 달성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는 특정 교과목에서 설정한 수업 목적에 맞춰 학생의 학습 성취 과정을 관찰할 수 있고, 학생의 상황과 맥락에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 학생 또한 자신의 필요와 역량에 맞게 시간과 노력을 조정할 수 있다.

절대평가에서 존중하는 학습의 방법은 그 목적 달성에 적절한 ‘과정’ 중심이다. 과정 중심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 또는 동료 간의 존중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 절대평가의 궁극적 도달점은 학습의 주체인 학생이 배움의 과정에서 확인하는 자신, 동료, 선생의 역할과 인정이다.

결과적으로 절대평가는 학습 과정에서 협력과 연대를 존중하기 때문에 소통도 많아지고 인간에 대한 신뢰도 쌓을 수 있다. 이것 말고 대학생 학습평가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시행착오를 인정받고, 동료와 선생의 피드백을 거쳐, 자신이 선택한 교과목에서 좋은 학점을 받았으면 최고의 성취 아닌가.

교육부가, 기업이 그런 학습 성과를 보고 ‘학점 거품’ 혹은 ‘학점 퍼주기’라며 폄하한다고 해서 우리가 괘념할 이유가 무엇인가. 선생과 학생 그리고 동료들이 인정하는 학습의 과정과 성과 말고, 누구의 인정이 필요한가. 그런 신뢰와 자신감이 없는 대학의 성적 평가 혹은 학습 성과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학지도부의 적극적인 인식전환과 과감한 제도개혁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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