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라는 단어에 대한 뜻에 대한 설명 중 인상적인 것은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풀이다. 삶의 기본요소가 된 듯한 코로나라는 말은 이전과 다른 세계의 상징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삶에서 너무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몰랐다가 정지와 전환 속에서 새삼 그 중요성을 실감하는 것들이 있다.

올 한해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 낯선 상황에서 두 번의 학기를 보내고있다. 봄학기는 대학의 구성원 모두에게 좌충우돌의 시간이었다. 신입생들은 입학의 설렘과 캠퍼스의 분주함과 따뜻함을 느껴보지도 못한채 온라인으로 동료들과 교수들을 마주해야 했고, 교수들도 화상 회의 도구를 새롭게 익히고 대부분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동영상 강의를 제작해야 했으며 직원들도 방역 대책에 분주했다.

강의에서는 온라인 화상 회의 도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여러 가지 해프닝이 벌어졌고 인터넷 장애나 접속 기기의 결함으로 온라인 강의에 접속하지 못하거나 끊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소통을 위한 통신 도구의 편리함의 이면에는 의존성이 있었다. 온라인 강의의 기초인 인터넷 상태와 접속 기기는 사실 개인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보통신기술에 의존하는 온라인 화상 강의는 기본적으로 자율적이지 않으며 불안정하다.

온라인 강의에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얼굴과 배경이 드러나는화면을 켜는 것이었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인터넷이 학생들의 사적인 공간들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는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화면을 켜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교수의 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가? 화면을 켜라고 강제하는 교수도 있었고 학생들의 결정에 맡기는 분도 있었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의 규칙은 부재했다. 온라인 강의와 달리 대면강의가 진행되는 강의실은 그곳에 오기 위해 씻고 옷을 입고 강의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도달하는 곳이며 자거나 먹거나 누울 수 없다는 암묵적인 규칙과 관습이 존재했던 것이다.

화면을 켜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강의실의 새삼스러운 공적 성격이다. 모두가 보고 듣고 들리는 공간이 강의실이며 우리는 이 공적 공간에서 온 얼굴과 몸으로 소통해온 것이다.

이 공적 공간에서 학습의 중요한 요소는 공통의 규칙과 연결된 자율성, 유연성, 열림이며, 이것이 서로 보고 들리는 강의실의 분위기와 강한 학습 기억을 만든다. 따라서 영상 강의나 온라인 화상 도구의 편리함과 장점이 있지만 이 공적 공간으로서 강의실을 대체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라인 강의를 병행하더라도 학생과 교수의 대면소통을 보강하고 이 소중한 공적 공간을 다시 열기 위해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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