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남자가 69세 여자를 성폭행했다. 하지만 젊은 남성이 늙은 여성을 성폭행할 개연성이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은 기각된다. 영화 <69세>의 내용이다. <전대신문>이 한국에서 최초로 노인 성폭력 피해를 다룬 영화 <69세>의 임선애 감독을 만났다.

 

Q. 데뷔작으로 ‘노인 성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루게 된 계기는?
= 어떤 한 가지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성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성폭력에 관련한 기사를 보면 지나치기 어려웠다. 우연히 노인 성폭행 사건을 다룬 칼럼을 읽었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여성이 사회에서 크고 작은 성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개인적으로 중년 이상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중년 이상의 여성이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가 아닌 그 여성만이 가진 서사로 전개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노인 여성의 삶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60대에 성폭력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니 오히려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영화 제작의 원칙이 있다면?
=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는 방식을 지양하는 게 가장 큰 원칙이었다. 성폭력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한다는 명목으로 2차 가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또 가해자에 대한 필요 없는 서사들을 배제하고자 했다.
클로즈업 샷을 최대한 자제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등장인물의 표정을 통해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Q. <69세>가 영화의 제목으로 선정된 이유는?
= 시나리오를 적을 때 주인공의 이름과 나이를 먼저 정한다. 중년과 노년의 경계에 있는 나이를 생각하다가 69세를 선택하게 됐다. 더 좋은 제목이 나타나지 않아 69세가 영화의 제목이 됐다.

Q. 주인공 ‘효정’을 그릴 때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이 있다면?
=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 노인 여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디테일한 설정은 예수정 배우와 논의를 통해 채워나갔다. ‘효정’은 우울증을 앓았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고 운동을 하며 스스로 극복하려고 한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항상 옷도 정갈하게 차려입는다. 끝내 ‘효정’은 빛을 향해 나아간다.

Q. 가해자 ‘중호’를 그릴 때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이 있다면?
= 특별한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해자의 직업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간호조무사로 정했다. 동시에 성폭력을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친절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인물로 설정했다.

Q. 조력자 ‘동인’을 그릴 때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이 있다면?
= ‘동인’이 가장 관객과 눈높이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동인은 ‘효정’을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폭력을 가한다. ‘효정’과 상의 없이 가해자 ‘중호’를 찾아가 고발문을 보여주고 자백하라고 강요한다. ‘동인’은 스스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효정’의 사건을 통해 각성하고, 반성한다. 조력자이면서 효정의 사건을 통해 성장하는 인물이길 바랐다. ‘효정’과 ‘동인’은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서로 마주하며 위로한다.

Q. 노인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노인 세대에 갖는 사회적 편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 사회에서 노인은 작고 약하며 멈춰있는 존재로 취급된다. 그런 존재들이 여전히 스스로 존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명예와 권리를 주체적으로 지켜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영화에서도 ‘효정’을 구해 줄 영웅은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결국 다시 노인들은 무력한 존재로 남는다. 살아 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노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나’의 존엄을 스스로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의 존엄을 자각할 때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변 사람, 타인의 존엄도 존중할 수 있다. 그 사람 자체로 존엄한 인간으로 대한다면 사회의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Q.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는가?
= 대학 시절부터 준비했던 <세기말의 사랑>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선정됐다. 투자자와 제작자들 앞에서 영화 제작 가능성을 보여줄 기회이므로 열심히 시나리오 수정 중에 있다.

Q. 이밖에도 <전대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떠가는 배에 몸을 맡기세요”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때 고민해도 늦지 않다. 실패해도 되는 나이이니 일단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