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무언가를 말하듯 한 줄기 남김없이 사라지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광주에 가기 전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코로나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하지만 화창한 하늘은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장 먼저 내쳐진 것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병원 면회도 장례식도 그에 해당했다. 장례식을 찾은 대부분의 손님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 간단히 애도했다. 참석 대신 계좌로 조의금을 입금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식장엔 먹지 않은 음식만 싸늘히 쌓여있었다.

한편, 장손은 빈소 앞을 서성거렸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흔한 눈물 한줄기 쥐여 드리지 못한 못난 손자였다. 면회를 했다면 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면회를 형식적이라고 여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장손의 눈가는 말라도 식장은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숨어서 훌쩍이는 가족들과 곡을 하시는 친척 어르신들과 마르지 않는 할머니의 눈가를 보며 넘쳐흐른 감정을 주워 담고 간직했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은 없었지만, 마음은 그들이 흘린 눈물에 젖어있었다.

우리는 귀찮은 표현을 대게 ‘형식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형식’도 마음속의 감정을 담는 그릇이다. 할아버지는 무지했던 손자를 맑은 하늘과 흘러내리지 않는 눈물로 질책했다. 할아버지에게 듣는 처음이자 마지막 꾸중이었으며 장손으로서의 마지막 몫이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마음을 담은 포옹 한 번, 생일에 주는 작은 선물도 모두 형식적이고 본질적인 표현이다. 모름지기 소중한 감정은 소중한 그릇에 담아야 한다. 이제 필자는 매초롬한 흙을 주무르며 희로애락을 담을 근사한 그릇을 빚는다. 당신에게도 그릇이 있다면 자주 닦아주며 온기로 따뜻하게 데우고, 아직 빚고 있다면 끝까지 마음을 다하자. 언젠가 그릇을 비워낼 때 아쉬움이 묻어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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