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들 사이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 두 사람이 산을 오르다 곰을 만났습니다. 놀란 두 사람이 곰에 쫓겨 산을 뛰어내려오는 사이, 갑자기 한 사람이 발을 멈춰 신발 끈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내려가던 사람이 물어보았습니다. “얼른 도망가야 곰에게 잡아먹히지 않아요!” 그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전 당신보다 한 발짝만 빨리 도망가면 됩니다.”

‘적자생존(Survival of fitness)’은 진화론의 핵심 개념입니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질이 살아남아 그 형질이 후대에 유전되는 원리죠. 그런데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하여 오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적자생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됩니다. 적자생존은 퍽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짝’만 앞서 있으면 되지, 굳이 큰 위험부담과 에너지 손실을 감수하고 ‘멀리까지’ 뛰어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물의 진화는 목적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완벽한 형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그때그때 필요한 형질, 특성이 남아 생존, 진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화의 역사를 보면 누덕누덕 기워진 옷과 같은 증거가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척추동물의 맹점이 있습니다. 맹점은 망막에 구멍을 뚫어 시신경을 지나는 구멍을 만들어 놓은 곳인데, 이는 마치 TV 화면 중심에 구멍을 뚫어 케이블이 화면 앞으로 빠져나가게 한 것과 같습니다. 눈이 이렇게 불편하게 진화한 이유는 초기 척추동물의 빛을 인식하는 기관이 눈으로 진화했기 때문으로, 초기 척추동물의 시신경이 망막 앞에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지하는 반례로, 무척추동물인 오징어의 눈은 맹점이 없습니다. 시신경들이 전부 망막 뒤에 위치하기 때문으로, 척추동물과 다른 진화의 역사를 거쳐왔기 때문이죠.

얼마 전 막을 내린 올림픽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여럿 보였습니다. 배드민턴 남자 단식 16강에서는 허광희 선수가 세계랭킹 1위 일본을 꺾은 파란을 일으킨 반면, 8강에서 세계랭킹 59위 과테말라에게 패배, 탈락하였습니다. 또한 여자배구에서도 세계랭킹 4위 터키 대표팀을 세계랭킹 14위 대한민국 대표팀이 꺾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결과가 가려져야 하는 승부에서 세계랭킹이라는 절대적 기준보다 그날 그 경기에서의 전술과 컨디션이라는 상대적 기준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화의 역사에서 보면, 다음 문구가 가장 적절히 적자생존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 이주현 생물과학·생명기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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