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에 관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오늘날 달라진 ‘가족’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문학과 영화, 가족을 그린 예술가들의 그림 등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만나는 가족의 모습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면을 다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가족의 개념은 확장되었다. 법률적으로 상징화 되어버린 가족이라는 개념은 이미 단순한 혈연·혼인관계를 넘어 여러 형태의 가족으로 드러나고 있다.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자녀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하는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이제 고전적 개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의 가족은 1인 가족, 반려가족, 다문화가족, 딩크(DINK)족, 조손(祖孫)가족. 한 부모 가족, 입양가족, 소년소녀 가장가족, 독거노인 등 다양한 형태로 불리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 삶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을 한 사회의 변화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라 한다. 사회라는 거대 담론의 장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단위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가해지는 변화와 갈등 등이 가족서사를 통해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언뜻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울타리 확장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가족의 해체를 가져오고 있다. 부모의 이혼, 미혼 자녀의 독립 선언, 자녀 교육, 직장 발령, 가족 범죄 등의 다양한 이유가 이러한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미 202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가구의 30%가 넘었고, 이러한 추세는 2030년에 절반이 넘는 비율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전적인 가족의 의미는 오래 전에 무너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의 해체현상이 늘어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것은 가족의 품이다. 가족은 휴식과 재충전, 애정 및 정서적 안정, 사회구성원의 출산 및 양육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혈연관계 외에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사람들과 시·공간을 공유하며 관계를 맺어 가는지도 모른다. 정신적 유대와 정서적 교감으로 가족을 재구성하는 모습도 이 시대 가족의 풍경이기도 하다. 오히려 혈연관계에 의한 가족보다 끈끈한 형태의 가족이 되기도 한다. 2006년 개봉한 〈가족의 탄생〉이란 영화를 비롯하여 서로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가족을 형성하는 서사는 많이 있지만 이것이 가족의 해체나 부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주거나 가족의 기능을 회복해 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무엇이 가족이란 이름을 해체시켰으며, 가족 공동체의 위기를 가져왔는지 생각해 보면 그 중심에는 개인의 욕망과 이기주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고립과 단절 등이 있다. 어렵게 번 돈을 왜 가족을 위해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결혼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고, 열악한 취업환경으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결혼은 가족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방식이다. 이들을 위한 제도적 차원의 정비도 필요해 보인다. 또한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멀어진 사람들에게도 가족의 유대감을 찾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 이들 중에는 가족이라는 정서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가족의 개념을 확대해 가족의 부재에서 오는 정서를 메울 대안을 찾아주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하든 ‘독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아래층에서 부모가 죽어도 2층에 사는 자식이 모르는 세상이다. 가족의 폭력도 가족 해체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가족이 타인보다 못한 세상이 되어야 하겠는가.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은 바로 우리의 가족이다”라는 권미경의 ‘아랫목’을 인용하며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본다. 

 

 

 

 

 이송희(시인, 국문과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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