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맞이하며, 최근 ‘2020 성공에 관하여’라는 광고를 통해 성공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 차쯤은 몰아야 한다는 이미지를 소비자들 뇌리에 각인해 성공한(혹은 비판을 받는)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를 떠올렸다. 1993년 기찻길을 배경으로 한 고등학생이 "우리 성공하면 뭐할까" 묻자 다른 친구는 "그랜저 사야지"라는 과거 기억을 소환한다.

1993년 당시 고등학생이라면 2020년을 사는 지금은 40대 중년에 해당한다. 비판적 소비자의 독해능력을 간과한 우려일지 모르나, 이 광고 하나로 졸지에 불안한 미래를 헤집고 오늘에 이른 성공하지 못한 40대 중년에게는 좌절과 또 이들의 자식으로 더욱 불안한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는 왜곡된 미래상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염려가 된다.

안타깝게도 같은 자동차가 성공의 증표라는 이미지 광고는 10년전에도 ‘성공적’이었다. 2009년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기억한다.

당시에도 이 광고는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는데, 10년만에 복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 성공에 대한 변하지 않은 정의를 보며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읽는다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광고를 통해 본 우리사회는 여전히 성공과 성장의 틀에 얽매여 있다는 것 정도는 확인해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가 소위 ‘성공’한 나라를 일컫는 3050클럽 국가에 들어섰다고 한다. 3050클럽 국가는 인구가 5000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긴 나라를 가리키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7개국만이 이에 해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사회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현실에 놀라게 된다. 매년 작업장으로 출근하는 노동자 중 하루 3명꼴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산업재해 통계는 그동안 성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성공의 빛에 가려 작업장이 죽음의 장으로 변해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었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출산율 최하위 국가라는 엄혹한 현실도 우리사회의 앞날에 깊게 드리워진 그늘이다.

우리사회는 지금까지 고도의 압축성장을 통해 거시적인 차원에서 성장에 기댄 양적인 풍요를 누려왔다. 한때 굶어 죽을 것을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굶어 죽기 보다는 비만으로 인해 죽을 걱정을 해야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성공에 대해 “배가 고픈” 성과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빠져 나오고 있지 못하다. 더 많은 우리 부모, 자식, 동료들이 작업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기 전에 양적인 성장을 질적인 성숙으로 대체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은 ‘편협한 실용주의’를 지적하며 ‘쓸모없음의 쓸모’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닌 당장 가시적인 쓸모가 보이지 않더라도, 영혼의 지적 허기를 채워주는 쓸모없는 공부가 필요하고, 대학은 마땅히 이러한 진짜 공부의 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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