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을 기념하는 <오월 평화 페스티벌> ‘오월 낭독회’에 참여하면서 1980년 오월 광주의 참혹한 슬픔의 현장, 505보안부대와 국군광주병원을 다녀왔다. 5·18민주화운동 사적지인 이곳에 들어선 첫 느낌은 슬픔이 아닌 절망과 공포였다. 당시 관련이 있는 증언자들이 끌려갔을 지하 계단은 얼마나 많은것들을 감춘 채 침묵하고 있을까.

‘서울의 봄_POST 5·18 문학, 새로운 기억의 생산’이라는 타이틀 아래 1980년 광주를 새로운 기억의 창조로 이끌기 위해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되새겨야 할 ‘한국의 기억들’을 POST 세대들의 문학으로 재현하면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항쟁 주체 이후의 작가들은 5·18 광주항쟁 기억의 매개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이고, 새로운 기억의 주체이기도 하다. 당시 세대들에게 5·18 광주항쟁이 억압된 기억의 해방을 위한, 투쟁과저항의 성격이 강했다면, 항쟁 이후 세대들에게 5·18은 역사의 새로운 생산자로서 보다 확장된 기억의 전수자이면서 창조자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 듯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은 과거의 사건이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다. 억압된 기억과 투쟁하며 시련 속에서 살아 온 40년의 시간이 여기 오롯이 남아 있다.

5·18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505부대와 국군광주병원에서 ‘POST 5·18 문학’을 이미지로 재현하고, 음악으로 울림을 주며 목소리로 되살리고자 모인 예술가들이 기억을 새롭게 구성한다. 이제 광주의 오월은 광주만의오월이 아닌, 대한민국의 오월이며 세계가 기억해야 할 오월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아닌 영상으로 시민들과 만나게 되는 이 프로젝트는 5·18 TV 개국일인 5월27일에 송출되며, 이후 VOD로도 만날 수 있다. 이 외에도 올 해는 대학생 서포터즈, 기념 블로그 이벤트, 영상 공모전, 카드뉴스 인터뷰 등 기존에 기억을 소환했던 방식보다 훨씬 다채롭게 5·18의 기억을 공유한다.

40주년을 맞아 윤공희 대주교는 <광주평화방송>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19일 집무실 창밖으로 계엄군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시민을 보고도 당장 뛰어 내려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한 없이 부끄럽다고 했다.

윤공희 대주교뿐이었겠는가. 절망과 공포는 그 어떤 이성적 행동도 마비시킨다. 타지에 살았던 한 시민은 인터뷰에서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고, 그래서 강제진압을 하고 있고 북한괴뢰군이 와서 선동을 해 광주는 빨갱이가 됐다는 TV 뉴스보도를 들었다고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근거 없이 역사의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며, 잘못된 역사라면 바로 알아가야 할 것이다.

부당하게 권력을 쟁취하고 최고의 권력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맛보려고 했던 맥베스. 부정한 방법으로 완성된 삶은 무의미하다. 권력은 사유화 될 수 없으며 권력을 업고 행하는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왜곡된 역사 속 기억을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5·18 40주년을 맞는 해에 여전히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아픈, 오월을 지나는 중이다.

이송희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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